Monday, March 5, 2012

노트북 배터리 실험, 왜 했을까?

지식경제부 산하 기술표준원이 지난 3월 24일부터 28일까지 경남 창원에 있는 한국전기연구원에서 폭발노트북 배터리 안정성 실험을 했다고 한다. 앞서 21일 공개 실험을 알리는 보도 자료를 배포한 기술표준원 측은 실험을 시작한 24일에 소비자 단체와 각 매체 기자들을 참관시켜 실험 현장을 공개하기도 했다. 그리고 지난 28일 “노트북 배터리 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다”는 결론을 발표했다.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발표가 나오니 맥이 빠진다.
그런데 뭘까? 의구심이 수그러 들지 않는다. 예상대로 당연한 결과가 나와서? 어쩌면 그럴 수밖에 없는 실험이었기 때문에? 그도 그럴 것이 이번 배터리 실험을 들여다보면 어떤 상황에서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느냐를 찾으려 한 게 아니라,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확인할 수 있는 지 보여주는 실험에 불과한 듯한 인상을 주어서다. 수 천만 원의 세금을 들여 진행한 실험이 ‘배터리 폭발 혐의 없음’이라는 달랑 한 줄만 적은 판결문을 발표하는 것으로 끝났으니 의구심이 줄어드는 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수많은 이들이 이번 배터리 실험을 주목했던 것은 배터리의 안정성에 대한 의혹을 해소하자는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 왜 노트북 배터리가 폭발하느냐에 대한 의문이 풀릴지도 모른다는 기대도 한몫 한다. 전자는 배터리의 안전성 때문에 불안해 하는 노트북 이용자의 마음을 안정시킬 수 있는 장치가 되고, 후자는 노트북을 쓸 때 무엇을 주의해야 하는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근거가 된다. 평생 배터리 폭발사고가 안난다면 전자만으로 충분하지만, 이미 여러 차례 배터리 폭발 사고가 난 만큼 후자를 아는 것도 이제는 중요해졌다. 때문에 이번 기회를 빌어 노트북 발화의 원인을 찾기를 바랐으나 이에 대해서는 아무 결과도 얻지 못했다.
어쩌면 그게 당연할 지도 모른다. 애초부터 폭발시켜 보자고 맘먹고 한 게 아니니까. 지금까지 노트북 배터리의 발화할 수 있다는 가설은 크게 두 가지다. 노트북의 열을 밖으로 빼내는 방열구가 막힌 상황에서 폐쇄된 공간 안에 있던 노트북의 과열에 의해 배터리가 영향을 받았을 때, 또 하나는 가열된 배터리가 충격에 의해 변형되면서 폭발했을 가능성이다. 이미 수많은 매체들이 이러한 가설을 쏟아냈고, 전문가들조차 불안정한 리튬 이온의 성질상 그럴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해오던 터였다. 허나 이번 실험은 폭발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만들지 않았다. 이전의 상황을 얼추 재연하거나 판에 박힌 실험을 반복했다. 이미 국제 기준에 따른 실험을 통과해 충분히 검증된 배터리들을 기준을 좀더 올린 상태에서 테스트한 것이다.
기표원은 1월과 2월, 노트북 배터리 가 발화되었던 두 가지 상황을 설정했다고 한다. 전기 장판과 가방 안에서 폭발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재연해 이상 유무를 확인하려 한 것이다. 또한 표준 규격 실험보다 강화된 기준에 맞춰 배터리와 셀의 폭발 실험도 병행했는데, 어떤 실험을 했는지 아래 기표원 보도 자료에 있는 글을 인용한다.
기표원은 이번 시험에서 노트북컴퓨터를 켜놓은 상태에서 가방 속에 넣은 후 각 부분의 온도상승 정도, 발화 유무, 배터리 변형 여부 등을 관찰한다. 또 담요를 깐 전기장판 위에 작동 중인 노트북컴퓨터를 올려놓고 시간이 지남에 따라 각 부분에 어떤 변화가 생기는 지도 확인한다.
배터리에 대해서는 높은 곳에서 떨어뜨렸을 때, 높은 온도를 가했을 때, 과전류를 흘려보내거나 과충전했을 때, 열에 노출됐을 때, 강한 압력을 가했을 때 등의 상황을 설정, 각 상황별로 배터리가 어떤 변화를 보이는지를 시험한다.
아래는 위 기준에 맞춰 어떻게 실험을 준비했는가 보여주는 ZDnet 코리아의 동영상이다.
일단 직접 그 현장에서 해당 실험을 지켜 본 것은 아니므로 따져보기가 어렵지만, 현장에 참석했던 모 인터넷 매체 기자를 통해 몇 가지 조건이 있었는지 물었다.
1. 노트북은 충분히 작동한 상황에서 가방에 들어갔는가?
아니다. 켜자마자 바로 가방에 넣었다.
2. 노트북의 방열구는 막혀 있었는가?
아니다. 막혀 있지는 않았다.
3. 노트북을 작동한 채로 배터리 부분에 특이한 이 물질을 올려둔 실험을 했는가?
그런 실험이 항목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4. 충분히 달궈진 노트북 배터리에 대한 충격 실험을 했는가?
그런 실험이 항목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5. 여러 번 떨어뜨린 배터리를 노트북에 꽂고 테스트 했나?
그런 실험이 항목에 있었는지 알지 못한다.
기 자에게 던진 다섯 가지 질문은 노트북이 어떤 상황, 즉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도록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상황을 만들어서 실험을 했느냐를 물어본 것이다. 하지만 기본적인 상황은 물론이고 배터리가 폭발할 수 있는 상황 자체를 현장에 참여한 기자가 확인하지 못했다고 한다. 적어도 오랫동안 노트북을 쓰다가 자리를 옮겨야 할 때 덮개를 덮고 바로 가방에 넣는 일상적인 노트북 이용 행태는 전혀 고려되지 않은 듯 보인다. 가방 속에 들어 있는 뜨겁게 달궈진 노트북이 가방 안에서 이리저리 충격을 받거나 바닥에 있던 이불이 방열구를 막아 시스템의 온도를 끌어올렸을 때, 또는 노트북 배터리의 발화를 돕는 외부 물질, 충격으로 정상적인 상태인지 알 수 없는 배터리를 노트북에 꽂고 작동시켰을 때 같은 실험은 없는 듯하다. 노트북이 발화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가정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결국 배터리 발화에 관해 ‘그럴 것이다’를 ‘그렇다’로 바꾸는 실험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있었다면 ‘배터리 문제가 아닐 것이다’를 ‘아니다’로 확인한 정도라 할까?
국제 기준보다 더 엄격한 설정으로 실험을 한 게 잘못된 것은 아니다. 단지 국민의 세금을 들여 가면서 실험을 할 때는 그들이 알아야 하는 것 정도는 결과를 얻어내야 하는 게 아닐까 하는 것이다. 적어도 다양해진 노트북 이용 환경에 맞춘 실험 상황을 정하고 그 위험의 가능성이 실제로 나타날 수 있는지 알아냈어야 했다. 이렇게 기업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만 얻고 끝내는 것은 노트북 이용자들이 바랐던 실험도, 결과도 모두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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